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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무 더워 운동하기가 쉽지 않다. 운동을 너무 즐겨하다 왼쪽 발목을 다친 뒤로는 운동량도 많이 줄었다. 그래서 하루 만 보 걷는 것과 음식 조절로 몸무게와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오늘은 점심을 먹으러 인근 장현까지 걸어갔다. 덥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걸어야 하루 만 보가 채워진다.


장현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탄천을 지나게 된다. 조금 더 걸어가면 본류인 왕숙천도 만난다. 이곳에서는 서울 도심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왜가리와 하얀 백로를 흔히 볼 수 있다. 길고 뾰족한 부리를 물속에 들이밀며 물고기를 잡는 야생의 다큐를 보는듯해 걸음을 잠시 멈추게 된다.


탄천가에는 요즘 개망초와 큰금계국이 많이 피어 있다. 둘 다 외래에서 들어온 꽃이지만 이제는 우리 들녘에 너무 익숙해져 마치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자란 토종 들꽃처럼 느껴진다. 이제 한여름을 환하게 밝혔던 들꽃들도 대부분 시들어 간다. 오늘은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아, 벌써 가을이 오고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다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호흡하고, 누려보지도 못한 채 여름을 보내고 말았을까. 아니 가을이 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이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마음에 머물렀다. 우리는 내면의 깊은 욕구와 감정을 알아차리지도 못한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영성이 살아 있다는 것은 감성도 살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인 자연과 계절의 변화에 그리고 내 몸에 아무런 느낌이 없이 살아갈수 있겠는가? 영성은 하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도 바라보고 느껴볼수 있는 감성도 갖는 것이 아닐까?


나는 장미나 튜립처럼 사람이 정성껏 가꾸어 놓은 꽃보다 들풀과 야생화를 더 좋아한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내가 재배화 같은 존 로크보다 야생화같은 장 자크 루소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또 내 인생 전체가 잡초처럼 험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다. 적어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내가 가장의 책임을 짊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서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사람이 빚어낸 음악과 그림, 건축과 문학에는 얼마나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자체가 세상의 모든 꽃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왜 자꾸만 ‘자연 그대로’ 야생을 좋아하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이 무너져 가는 것을 느낀다. 정확히 말하면 터닝포인트가 복음 앞에 굴복 되면서 부터이다. 예전에는 이것이 옳고 저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분명했다. 신학도, 정치적 관점도, 내가 좋아하는 방식도 중요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서로에게 이름표를 붙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물러 오신 분이셨다. 복음으로 굴복된뒤 나의 모든 틀도 무너졌다. 좋아하는 신학도, 이념도, 옳고 그름도, 취향도 없어져 백치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삶은 제대로 가는 것인가? 잘못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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